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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53

산의 정기

가족 카톡에 백록담 사진을 올리니 아빠는 "드정 축하(아마도 등정 축하)"라고 보냈고 엄마는 "제주도에 사는 사람도 백록담을 잘 못본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네~ 좋은 기운 받아서 행운이 깃들기를 바래 ^^" 라고 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게 힘이 있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산의 정기라는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발휘된걸까. 신기하게도 그렇게 애타게 찾던 행운은 올 듯 말 듯 망설이다, 결국 못이기는 척 와주었다.

드디어 백록담

지겹다 지겨워. 아무리 올라도 끝나지 않는 그 길.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게 이 정도였나. 하필 성판악이 막혀서 제-일 힘든 코스를 올라야 했다. 그래도 나름 제주도에 일주일을 넘게 있는데 한라산 정상 한 번 찍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돼. 고르고 골라 어느 날씨 좋은 날, 덕분에 구름의 방해 없이 또렷한 백록담을 볼 수 있었다. 영혼과 맞바꿔 오른 정상은 그래서 더 달콤했다. 성판악은 비교적 수월하다는 말에, 또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 까맣게 익는 줄도 모르고 오르다 이제야 벗겨진 피부를 보며 한라산의 맑은 공기와 높이를 다시금 떠올린다.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 올랐던 그 기억으로. 잘 해낼 수 있을거야.

라벨로에서 공연을

20명이 겨우 탈 수 있을까. 오기로 한 시간보다 40분 늦게 도착한 마을 버스는 작은 풍채에도 이유 없이 당당했다. 새로운 숙소 체크인까지 남은 시간은 40분 남짓. 한여름인데도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흘렀다. 10만원 깨질 각오를 하고 택시라도 타야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버스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탔다. 관광객은 나 뿐이었다. 일단 탔으니 됐다. 얼마나 걸리겠어. GPS로 보면 직선거리는 얼마 되지 않던데. 불안감은 5분만에 다시 목을 타고 올라왔다. 작은 마을버스는 이탈리아 중부의 한 바닷마을 절벽길을 끝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경사도 무지하게 가파라 버스는 속도도 내지 못했다. 영어 방송 하나 없던 버스에서 기댈 곳은 사람 뿐이었다. 영어 한 마디 할 수 없는지 나폴리 지방 사람들은 수줍다. "R..

팬케이크

​​ 도쿄 어느 명품거리 뒷골목에 있는 팬케이크 맛집. 지하에 있는 식당인데 지상까지 줄 서있는 현지 사람들 보고 본능적으로 줄 섬. 3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 보이는 것만큼 부드러움. 계란찜의 텍스처. 1200엔 정도 였는데 아깝지 않았음.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집! 한국에 돌아와서 빌즈 bills 팬케이크를 최근에 먹게 됐는데, 여기를 표방한 것 같았음. 겉보기엔 비슷한 데 더 비싸고 맛도 평범. 이 충동적인 행동에 더욱 만족하게 된 계기.

우롱하이볼-오코노미야끼

​​신주쿠에서 비주얼 폭발하는 오코노미야끼를 만났다. 테판베이비 라는 곳이었던 것 같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30분정도 웨이팅. 회식하는 직장인이 바글바글한 것을 보니 맛집 맞나보다*_* ​우롱하이볼을 한 번 먹고 싶었는데 다행히 여기에 있었다. 너무 괜찮더라. 에피타이저로는 소힘줄을 염장한 육포를 시켰다. ​​바에 앉았더니 오코노미야끼 만드는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나는 파가 이만큼 올라간 기본 오코노미야끼를 주문. 마지막에 올라간 노른자는 화룡점정! 인생 오코노미야끼였다.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것들도 맛있어 보였다. 배가 너무 불러 아쉽게도 여기서 멈춤. 또 가고 싶다. 남의 나라에서 우리나라 올림픽을 보는 재미. 한 일본 선수의 경기. 그는 어떤 결과를 받았을까.

블루보틀 in 하라주쿠

​​​​​​ 도쿄 필수 방문지라는 블루보틀. 샌프란시스코에서 블루보틀 커피를 먹어봤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런 맛인줄 알았다면 시간 들여 안갔을거다. 한국보다 훨 따뜻한 날씨에 겨울에도 아이스음료를 먹기 부담은 없었다. 아이스라테를 주문했다. 주문을 아이패드로 하는 점이 인상적. 주문해주는 직원 뒤로 펼쳐진 오픈 키친도 보기 시원하고. 커피맛은 인상적인 지점이 하나도 없었다. 같은 돈 주고 폴바셋을 가지. 깔끔한 인테리어와, 멋진 테라스, 예쁜 로고가 전부. 차라리 로컬 카페를 더 가볼걸. 한국에도 들어온다던데 큰 기대는 안한다.

이탈리아 로마 린칸토 디 로마(L'Incanto di Roma) 숙소 후기

2013년 이후 다시 찾은 로마. 4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 하나 없다. 오히려 그 동안 나 혼자 격변을 겪은 듯하다. 20대 초반 비행기값만 들고 왔던 어리숙한 대학생은 어느새 일에 찌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는 직장인이 되어 버렸다. 학생 때는 돈을 아끼겠다며 유럽의 게스트하우스나 한인민박에서만 지냈다. 이번 여행에선 한인 민박은 딱 두 번만,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숙소 구하기 어려운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선 대안이 없었다.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로마이지만 다른 관광지보단 인프라가 좋고, 숙소 구하기도 비교적 용이한 편. 로마의 한인민박은 대부분 떼르미니역 근처라 여자 혼자 밤 늦게 돌아다니려면 좋은 선택은 아니다. 로맨틱한 야경을 두고 일찍 돌아올 수도 없고. 빽빽하고 좁은 건물에서 사람들과..

이탈리아 라벨로 Boccaccio B&B 호텔 후기

15일간 이탈리아 여행, 라벨로에서 그 중 1박을 지냈다. 포지타노나 아말피에 온 여행자들이 당일치기로 잠깐 들리는 곳인데 나는 아예 하루 머물렀다. 음악의 도시 라벨로에선 거의 매일 공연이 있는데, 그걸 꼭 보고 오고 싶었다. 공연이 밤 늦게 끝나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없는데 맘 편히 숙소를 잡으면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진다 :D 내가 예약한 Boccaccio B&B. 라벨로 마을 입구에 위치한 정류장에 내려서 바로 보이는 길로 1분만 걸어가면 된다. 절대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안된다. 누구처럼 터널로 들어가 마을 광장에서 헤맬까봐 노파심에. 호텔이라고 하기엔 방이 많지 않다. 3-4개 정도. 들어갔는데 방이 넓었고 인테리어도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전에 포지타노 머물렀던 호텔보다 훨씬 저렴한..

이탈리아 포지타노 HOTEL LA BOUGAINVILLE 후기

이탈리아 15일 여행, 아말피 해안에서 머문 도시 중 하나는 포지타노.워낙 유명한 휴양도시라 신혼여행으로 많이 온다. 호텔 후기를 찾아보면 스위트룸에서 지낸 사람들도 많다.6월 초부터 휴가 시작이라 숙소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한다. 나 같이 혼자 여행 잘다니는 사람들에겐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없어 불편한 도시이기도. 같이 룸쉐어할 사람을 유랑에서 찾아봤지만 카프리 보트 투어에 대한 질문만 있을 뿐, 룸메는 구하지 못했다 '-T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은) 시타버스를 타고 포지타노에 도착. 바로 숙소로 향한다. 해변가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10분정도 걸어내려 오면 보이는 간판! 유명한 사보이아 호텔을 검색해도 무방하다. 호텔 부게인빌레(HOTEL BOUGAINVILLE) 간판이 보인다. 사보이아라는 한국 사..

이탈리아 팔레르모 숙소 - Vespa B&B

15일간 이탈리아 여행, 그간 지냈던 숙소 후기.시칠리아는 국내 여행자들에겐 상대적으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시칠리아 내용만 있는 책을 찾긴 힘들고 여행 가이드에 나와있다고 하더라도 그 분량이 아주 짧다. 팔레르모에선 Vespa B&B 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vespa B&B 호스트 중 한 명이 한국분이다. 현지 정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맛집부터 여행코스까지 도움 정말 많이 받았다. (일단 도착하면 팔레르모와 여행코스에 대해 A-Z까지 설명을 해주신다. 엄청 체계적으로!) 팔레르모 기차역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다. 15분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6월 초 후덥지근해지는 시기여서 캐리어를 끌고 오느라 고생을 좀 했다. 메인스트릿을 걸어오다보면 숙소가 바로 있다. 골목에 있는 게 아니라서 다..

팔레르모, 그 중에서도 '몬델로'

고백하자면, 팔레르모에서 이런 절경을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 여행지를 조사할 겸 짧게 들렀던 팔레르모인데, 그것도 여행 2일차에 이번 여행에서 손꼽히는 장소를 만났다. 팔레르모에서 어디를 가장 추천하는지 묻는다면 고민도 안하고 "몬델로!"라고 답할거다.산으로 둘러쌓인 바다와 하얀 백사장, 바닥이 훤히 보이는 애메랄드 빛 물. 이렇게 '비현실적인' 풍경은 또 처음이다. 물 맑은 제주도 어느 해변에 가도 이런 절경을 찾지 못했다. 팔레르모에서 3박을 보낸 vespa B&B. 운좋게도! 숙소에서 만난 분들 역시 이날 몬델로 해변에 가신다고 해 함께 택시를 타고 왔다. 팔레르모 시내에서 택시로도 15~20분정도 타고 들어왔다. 옆에 펼쳐진 절경을 배경 삼아 야외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숙소의 ..

로마-팔레르모 야간 기차 후기②

비행길 놓친 바람에 타게 된 이탈리아 야간 열차.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시실리로 가는 기차는 중간에 배로 이동한다는 것이다.말 그대로 기차가 배에 오른다. 다행히도 룸메이트가 없었다. 옆 방도 거의 다 비었다. 시칠리아 갈 때 기차를 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의미하겠지. ㅠㅠ..아니면 2인실이나 1인실에 몰려있거나. 야간열차는 (나처럼)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만 고려하길 바란다. 타자마자 검표원이 티켓 확인을 하면서 침구류를 줬다. 침구류를 두 개 주길래 나중에 누가 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여분으로 준 것 같다. 4인실을 혼자 쓰려니 겁나 편하다. 휴대폰 충전도 되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다. 불도 내 마음대로 껐다 켜도 되고. 화장실은 공용이다. 샤워실은 없고, 간단히 세수할 수 있는 세면대..

로마-팔레르모 야간 기차 후기 ①

인천-아부다비-로마-팔레르모... 이탈리아로 떠나는 날, 여행 첫날은 이렇게 이동만 할 예정이었다. 3편의 비행기를 타야했지만 계획대로만 되면 나쁠 것 없는 일정이었다. 사실 로마행 티켓을 살 당시만 해도 사실 시칠리아에 갈 마음은 없었다. 일정을 짜다 시칠리아에 대한 좋은 후기를 읽었고,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어떤 이는 본섬(이탈리아 반도)에 가지 않고 시칠리아 섬에서 한 달을 보내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말도 했다.하지만 나의 경우 이번 여행에서 이뤄야 할 몇 가지가 있어 모든 일정을 시칠리아에서 보낼 순 없었다. 대신 팔레르모에서 4박5일을 보내며 분위기를 살펴볼 예정이었다. 국제선이 한 두시간 연착될까봐 4-5시간 텀을 두고 예매한 팔레르모 행 라이언에어. 아부다비에서 하필이면 정확히 4시간이 연착..

[인도]인도에서 데려온 아이들

​ 세밀화는 얼마에 사면 되요? 헤나는 얼마 정도에 하나요? 바지는요? 가죽신발은? 정찰제가 자리 잡지 않은 인도에서 우리 가이드님 가장 귀찮게 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본인이 이 정도면 됐다 싶은 가격에 사는 게 마음편합니다." 가이드님의 말에 기운을 얻어 이것저것 샀나보다. 가방에 넣어두어 깜빡 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가져왔더라. 현지에선 몰랐는데 한국에 펼쳐보니 인도의 색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특히 저 조명은 정말 예뻐서 눈물이 날 것 같다. 100루피, 200루피에 전전긍긍했다면 누릴 수 없는 것들. 카르페디엠은 만족에 더 가까운 개념이라고 다시 한 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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