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정기 가족 카톡에 백록담 사진을 올리니 아빠는 "드정 축하(아마도 등정 축하)"라고 보냈고 엄마는 "제주도에 사는 사람도 백록담을 잘 못본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네~ 좋은 기운 받아서 행운이 깃들기를 바래 ^^" 라고 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게 힘이 있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산의 정기라는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발휘된걸까. 신기하게도 그렇게 애타게 찾던 행운은 올 듯 말 듯 망설이다, 결국 못이기는 척 와주었다. 여행기/[2018.07]제주도 2018.08.12
드디어 백록담 지겹다 지겨워. 아무리 올라도 끝나지 않는 그 길.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게 이 정도였나. 하필 성판악이 막혀서 제-일 힘든 코스를 올라야 했다. 그래도 나름 제주도에 일주일을 넘게 있는데 한라산 정상 한 번 찍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돼. 고르고 골라 어느 날씨 좋은 날, 덕분에 구름의 방해 없이 또렷한 백록담을 볼 수 있었다. 영혼과 맞바꿔 오른 정상은 그래서 더 달콤했다. 성판악은 비교적 수월하다는 말에, 또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 까맣게 익는 줄도 모르고 오르다 이제야 벗겨진 피부를 보며 한라산의 맑은 공기와 높이를 다시금 떠올린다.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 올랐던 그 기억으로. 잘 해낼 수 있을거야. 여행기/[2018.07]제주도 2018.07.26
태풍이 제주도에 태풍이 온 그날 자기 좀 구해달라며 카페 앞에서 울었다는 아이 그렇게 간택을 받은 카페 주인장은 목 좋은 자리에 상자를 잘라 침대를 만들어두었다. 호기심이 많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대다가 이내 지루해지면 화분 뒤로 쏙 숨어버린다. 이름을 묻지 못했지만 나는 태풍이로 기억할래. 여행기/[2018.07]제주도 2018.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