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길 놓친 바람에 타게 된 이탈리아 야간 열차.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시실리로 가는 기차는 중간에 배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기차가 배에 오른다.
다행히도 룸메이트가 없었다. 옆 방도 거의 다 비었다. 시칠리아 갈 때 기차를 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의미하겠지. ㅠㅠ..아니면 2인실이나 1인실에 몰려있거나. 야간열차는 (나처럼)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만 고려하길 바란다.
타자마자 검표원이 티켓 확인을 하면서 침구류를 줬다. 침구류를 두 개 주길래 나중에 누가 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여분으로 준 것 같다.
4인실을 혼자 쓰려니 겁나 편하다. 휴대폰 충전도 되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다. 불도 내 마음대로 껐다 켜도 되고.
화장실은 공용이다. 샤워실은 없고, 간단히 세수할 수 있는 세면대가 있다.
여자 혼자 야간기차를 탄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기차에서 혼자 12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 무섭기도 했다. 생각이 많아졌지만 문을 잘 걸어잠그고 잠을 잤다.
새벽 3시나 됐을까, 기차가 한 역에서 멈췄다. 이 열차에서 처음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한 흑인 여자는 내 방의 문을 두드렸다. 잠겼던 문을 열었다. 그녀는 내 반대쪽 침대에 앉았다. 별 짐은 없었고 작은 가방과 비닐 봉지만 들고 다녔다. 아까 내 표를 확인했던 검표원이 다시 들어왔다.
검표원은 여자에게 티켓 값을 내라고 했다. 그는 표도 없이 내 방으로 일단 들어와 앉은 거였다. 여자는 한 숨을 쉬며 지갑을 열었다. 그리곤 30유로밖에 없다며 태워달라고 계속 빌었다. 검표원은 단호하게 쫓아냈다.
자다 깬 나는 멀뚱히 앉아 바보같이 두 사람이 실랑이 벌이는 걸 지켜봤다. 이 모든 게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소란이 지나고 다시 기차가 출발했다. 나는 문을 걸어잠그고 잠을 청했지만 이미 정신은 말짱해졌다.
이 점만 빼면(?) 야간기차에선 별 일 없었다.
어느 순간 기차가 앞으로 가지 않고 가만히 멈춘다. 그러나 낯선 풍경이 창 밖에 펼쳐진다. 기차가 배 위에 오른 것이다. 시칠리아로 가는 야간 열차는 본섬에서 섬까지 기차가 배로 이동한다.
정리하자면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남부에 있는 Villa San Giovanni(빌라 산 지오반니) 역까지 기차가 간다. Villa San Giovanni(빌라 산 지오반니)에서 기차는 시칠리아 메시나(messina)까지 배로 이동한다.
메시나(messina)에서 기차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짐작컨데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인 것 같다.
기차를 타기 전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이 칸에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환승 없이 팔레르모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배 안에 기차가 들어올 수 있는 선로가 있다.
기차 승객들은 배가 뜨면 내려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기차에 내려 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하늘이 파랗다.
올라왔더니 이미 사람들이 올라와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시칠리아 섬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눈 앞에 시칠리아가 보인다.
기차가 배에 주차(?)된 모습. 다시 봐도 신기하다. 섬에 도착하기 전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기차는 이제 두 갈래로 나뉘어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달린다.
메시나(messina)에서 갈라져 팔레르모로 향하는 나의 기차. 바다를 따라 달린다.
팔레르모 중앙역 도착 전 기차 승무원이 찾아와 '다음 역에서 내리라'고 말해준다. 타고 싶어서 탄 기차는 아니었지만 재미있었던 경험이다. 팔레르모에 두 발을 내려 놓으니 실감이 난다. 이제 정말 여행이 시작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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