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기

호랑이

Post truth 2020. 12. 23. 00:59

왜요. 뭘요. 몰라요.

저 세 가지 단어로 모든 대답을 돌려막았다. 무려 2년을. 아니 어쩌면 3년을. 하도 민망하게 굴어서 전화를 할 때마다 입이 말랐다. 대답에 당황한 척 않으려 질문거리와 문장을 준비해 둔 적도 있다.

얼굴도 범상, 목소리도 쩌렁쩌렁. 인간 호랑이 그 자체였다. 기싸움에서 거의 매일 밀렸던 나는 언젠가부터 네네 하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오기가 생겼던 것도 있지만 악의가 있어 저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보통의 담력이 아니라는 것도 느껴졌다. 티격태격하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게 오늘까지 쌓였다.

좋은 조직이라면 공이 있는 곳에 자리를 만든다. 비범했던 이 호걸은 영웅이 됐다. 회사의 기둥이 될 것이다.

완벽주의자 성향인건 알았지만 이번에 일을 같이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별거 아니란 듯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쉼표 개수까지 확인할 기세였다. 다행히 본인 커리어를 증명한 지표가 됐나보다. 특유의 짓궂은 말투는 잃지 않으면서도 만족감을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호기로운 기상 내년에도 이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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