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기

헌혈

Post truth 2020. 12. 18. 23:21

의료진이 걱정이다.

5분도 가만히 서 있기 어려운 한파 속에서 진료소에 나가 있는 분들이 고생 많았을 것 같다. 하필 이럴 때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다니.

얼마나 고군분투 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생리대를 못갈아서 피 묻은 바지로 퇴근했다는 간호사는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롱패딩이 가려주었으니 망정이지 옷을 새로 사야 할 정도라고 했다. 너무 추워 손이 마비돼 괴롭다는 인터뷰도 있었다. 방호복은 입고 벗기가 불편해서 화장실 가기도 힘들고 밥 먹는 것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오늘 한 끼도 못먹었다'는 말은 간호사인 동생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숨 쉬기도 어렵다 한다.

이런 기사마다 댓글엔 힘내라, 당신들이 영웅이다 라는 위로의 글이 달린다. 좋은 말이지만 일선에 있는 간호사의 가족으로서 이런 희생을 한편으로 이 사회가 당연시 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위기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면 위험 수당, 초과 수당이라도 착실히 지급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럴리 없다. 오히려 어떤 병원은 올해 코로나19로 악화한 재정 상황을 이유로 평소 지급하던 인센티브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명감만으로 버티란 얘기다.

확진자가 쏟아지니 병상도 부족하고 그걸 관리할 의료진도 부족하다. 인력 충원도 잘 안해줄텐데 의료진이 지쳐서 줄퇴사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 간호사를 갈아 넣어 간신히 버터온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밑천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병원의 경영 상황만 고려하는 체제로 극한의 상황을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료진 관련 기사를 보며 이런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데 헌혈이 줄어 보유량이 급감했다는 기사가 연동돼 떴다. 소시민 주제에 이런 거라도 해야지 하면서 퇴근 후 센터에 들렸다. 다행히 컨디션이 좋았는지 피를 뽑게 해줬다. 4~5년간은 빈혈기 때문에 헌혈을 거절 당했다. 사은품이 다채로워졌더라. 올리브영 상품권이 가장 실용적이었다. 매혈도 아닌데 사은품 때문에 오히려 돈을 번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데 조금 어지러웠다. 물을 많이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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