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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

12월이란 걸 이제 실감했는 데 한 주가 벌써 가버렸다. 이 속도면 12월도 순삭할 것 같다. 일단 한 주는 휴가가 예정돼 있다. 아직 어딜 갈지 정하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건 있다. 정말로 그곳에 가게 되면 눌러 앉아 있다 올 생각이다. 영영 사라지고 싶다. 호프 자렌이 말했듯 황당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또 다른 한 주엔 건강검진이 잡혀 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한 해의 성적표를 보는 것 같아서 긴장되고 떨린다. 올해는 운동을 꾸준히 해 더 기대된다. 원래도 건강에 문제됐던 사안은 없지만 여러 수치들이 좀 더 개선되지 않았을까 한다. 코로나로 지난해보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던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다. 12월은 원래..

단편기 2020.12.06

습포지

11월 마지막주 일요일은 김장을 하는 날이다. 올해도 그날이 찾아왔다. 날짜를 비워놓으라고 몇 주 전부터 수차례 통보도 받았다. 정작 당일엔 엄마의 컨디션 좋지 않아 김장을 하지 못했다. 설계사 없이 건물 하나를 올려야 하는 상황과 같다. 다행히 엄마의 몸은 회복됐고 이번 주말 김장을 하기로 했다. 엄마는 하루에 걸쳐 느긋하게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김치에 온 정신을 쏟을 정신도 체력도 없었다. 일꾼 주제에 관리감독관을 다그치면서 '빨리 빨리'를 외친 끝에 3시에 모든 상황은 종료됐다. 남은 건 보쌈. 아침부터 한돈을 사와 좋은 재료 마악 넣었다. 김치를 담글 동안 푹 삶은 고기만 헤치우면 이 연례행사는 정말로 끝이 난다. 잘 익은 고기를 꺼내 한점 한점 후후 불어..

단편기 2020.12.06

The artist is present

https://youtu.be/HB2iiv9jBiU 행위예술가인 두 사람에겐 이별은 놓칠 수 없는 감정선이자 기록해야 할 순간이다. 이별을 말미암아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생각한다.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 만리장성을 따라 걸었고 중간점에서 만나 마침내 헤어졌다. 이별엔 균형이 없다. 누구 하나의 마음은 반드시 더 괴로웠을 것이다. 같은 거리라도 누군가의 길은 더욱 험난했을 것이다. 같은 시간이라도 누군가의 길은 더 짧게 느껴졌을테다. 뉴욕 MoMA에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다시 퍼포먼스다. 만리정성 프로젝트처럼 두 사람이 함께 기획한 것은 아니다. 여자의 프로젝트에 남자는 자발적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얼굴은 만리장성에서만큼 젊지 않다. 그건 미술관에 앉아있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독일인들은 뉴욕의..

단편기 2020.12.04

코어

필라테스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아주 어려운 동작을 한 번씩 알려주는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폼롤러를 세로로 두고 누웠다가 코어의 힘으로만 그 자리에 바로 앉는 동작이었다. 무릎은 최대한 펴야 한다. 어깨넓이만큼 벌린 발 끝은 바닥에 맞닿아야 한다. 양 손을 몸과 수직으로 올려 자세를 유지한다. 배에 힘을 주고 척추를 굴려 올라온다. 내려갈 때도 척추를 분절해 내려간다. 좌우로 움직이는 폼롤러 위에서 코어의 힘을 씀과 동시에 그 힘이 폼롤러의 움직임으로 이리저 분산되지 않게 집중해야 하는 동작이었다. 올라올 땐 갈비뼈를 조이며 올라온다. 오늘 클래스에서는 나만 성공. 어렵지 않게 중심을 잡고 일어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옆으로 넘어지거나 코어 힘이 부족해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 동작..

단편기 2020.12.03

스킨

지난 겨울 히알루론산 함유량이 높았던 스킨을 끝으로 어떤 스킨도 구매하지 않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깜빡 잊고 있었다. 스킨을 바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앰플-로션-크림까지 딱 세단계 기초화장에 선크림만 발라도 10분이 금방 지나간다. 이 과정이 더 길어지는 게 싫었다. 겨울이 오면서 얼굴이 다시 당기기 시작했다. 오전에 기초화장을 잘 다지고 나가도 오후가 되면 슬슬 감각이 온다. 카페나 건물 안의 히터로 피부 속 수분이 날아가버린 상태. 이럴때를 대비해 갖고 다니는 물광 스틱으로 급하게 수분을 공급하지만 이미 장벽은 무너진 뒤다. 결국 건성에 좋은 스킨을 찾아 고민없이 구매했다. 순하다고 잘 알려진 유리아주다. 무향무취하다. 히알루론산이 들어있어 바르고 나면 쫀득하게 남는다. 5..

단편기 2020.12.01

몇 가지 수다

진지하고 길게 쓰긴 그렇지만 오늘 느낀 중요한 감정들이라서. 두서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읊는다. 프로필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바디프로필은 아니고. 이 나이때 모습을 기록할만한 증명사진이 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코로나는 오랜 친구의 갓 태어난 아기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아이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집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게 민폐가 될 것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정말 아쉽다. . 갑자기 오늘은 이 말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멀리서 응원하고 있어요. 라고. 결국 말하지 않았다.

단편기 2020.11.30

언어가 흘러넘치면 어떤 모양이 될까

먼저 시작한 한국 작가의 어느 작법 책은 아직도 다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은 두번에 걸쳐 완독했다. 작가가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이다보니 일본어 문법 관련 조언도 섞여있어 이런 부분은 건너뛰어 읽어야 했지만. 매일 글쓰기를 하겠노라 마음가짐을 갖게 한 책인데 다행히 아직까진 잘 지키고 있다.책의 첫 사례로 나온 요시모토바나나의 매일의 일.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서 자체가 없는 듯 하다.새로운 착상은 몸을 움직이는 데서 나온다는 말에 공감. 걸어야 합니다. 뛰는 것도 괜찮고요.서사모아에 가보지 않고도 그걸 배경 삼아 글을 썼다는 작가짧게라도 쓸게요말과 글이 터져 나온 경험. 있으신가요? 언어가 흘러넘치면 어떤 모양이 될까요.열심히 묘사하는 걸로 끝나는 글 말고. 현상을 해석해야 남다른 글이 된다. 어휘..

단편기 2020.11.29

유통기한

차를 마시려 장을 열었다. 못 보고 지나친 일회용 드립커피가 하나 남아 있었다. 최근에 드립커피를 사거나 선물 받은 기억이 없는데. 유통기한을 살펴보니 올해 5월이었다. 5월이라. 한 두 달 안 된 것 같은데 그냥 먹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6개월 가까이 지났다. 순식간에 사라진 시간 속에서 나는 그 속도를 어떻게 버텨온 건가 잠깐 생각한다.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버리기 아까웠다. 드립백을 꺼내 절취선을 따라 잘랐다. 드립백 안의 원두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아직 커피의 잔향이 남아있었다. 드립백 안에 거미줄 같은 반투명한 선을 보았다. 설마 거미줄일까 싶어 손으로 뜯어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싱크대 속으로 무심히 던졌다. 날아가는 동안 흩어질 수도 있을만큼 얇았다. 의외로 ..

단편기 2020.11.28

weaving

주말에는 안쓰는 물건을 버리고 있다. 포장이사를 안할거라 최소한의 짐만 빼가야 한다. 그때 가서 한꺼번에 정리하긴 너무 힘들 것 같아 작게 구역을 정해서 버린다. 정리할 범위를 좁혀놓으니 버려야 할 것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버리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손에 잡힌 물건 중 하나. 지난 일년간 건드리지 않은 위빙이다. 티코스터와 담요를 만들겠다고 여러 패턴을 떠놨다. 꽤 많이 만들어놨네. 다시 보니 또 따뜻하고 예쁘다. 그래도 일년동안 안 건드렸으니 버려야 할 자격 요건은 충분하다. 필요한 사람에게 세트로 넘겨야지 하며 케이스를 닫아버렸는데. 못버리겠다. 깨작깨작 집중하는 재미가 있다. 시장으로 좋은 실 사러가서 다른 사람들이 요즘은 무슨 실을 많이 사가는지 듣는 것도 즐겁고. 예전엔 ..

단편기 2020.11.27

작은 변주

어제 머리를 정리했다. 머리숱이 많아 알게 모르게 뿌리 볼륨이 죽고 어깨가 무거웠다. 못 본 새 머리가 많이 길었다는 말도 들았다. 때가 왔구나 했다. 평소 가던 곳들은 왜 그런지 자꾸 타이밍이 안맞았다. 예약도 했는데 두 번이나 취소. 결국 안 가본 곳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역 근처라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주말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것 같진 않았다. 5분정도만 기다리면 내 차례가 온다고 했다. 젊은 디자이너가 와서 원하는 스타일을 물었다. 평소엔 갈라진 것만 정리해달라고 했는데 이번엔 이것 저것 요구했다. 하얀 도화지처럼 기교하나 없던 단순한 머리에 드디어 모양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트와이스 모모의 히메컷을 해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커트만으로 머리에 큰 ..

단편기 2020.11.26

건조해서 미안

같은 주제를 두고 쓰는 글인데 각자 가져오는 소재는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딱딱하고 전투적이다. 상대적으로 문장이 건조하다. 자연을 관찰해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수식어를 동원해 갖고 싶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경우는 짧게 문장을 친다. 낭만으로 모두의 마음이 물들 때 내가 틱틱대는 문장들로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다. 이 정도로 문체가 건조해진 건 세상을 삐뚤게 봐야하는 이 직업의 이유가 가장 크다. 피투된 삶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삶의 태도가 담기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 없다. 주제로 잡은 소재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가끔 꽂히면 또 기가 막히게 사심 발휘해 감정적으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굳이 그런 소재를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아주 사소하고 사적..

단편기 2020.11.22

갈등 조장

여당이 임대 주택 관련 정책을 남발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임대주택은 사회적 약자를 거주의 불안정성에서 보호하고 중산층으로 도약하도록 돕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 이런 목표인 임대 주택을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중산층에게 제공하겠다고 하면서 반발이 일고 있다. 꼼수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물량 공급이 어려우니 이런 식으로 억지 물량을 만들어 수요를 잠재우겠다는 시도다. 부동산 시장을 떠나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임대주택에 대한 혐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임대주택이 공급하는 좁은 평형의 구조를 두고 닭장이라고 비하하지만 누군가에겐 절실한 공간이다. 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실세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무척 불편한 상황일 것이다. 건강한 중산층을 두텁..

단편기 2020.11.21

줌인터뷰

모 로펌 베트남팀과 인터뷰를 했다. 현지에서 거주하는 변호사분들과 원격으로 이야기해야 했다. 남의 회사의 최첨단 인프라를 써서 질의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 회사는 이런 여건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줌 인터뷰는 나도 처음이었지만 회사도 처음이라 신선했다고 한다. 사보에 싣겠다고 한다. 오늘은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살이 에이는 듯 공기가 날카롭다.

단편기 2020.11.20

버리는 일

돈 쓰는 게 재미없다. 지루하다 싶으면 하나씩 지르는 재미가 있었는데. 욕구less. 지난 달 소비 패턴을 보니 생존에 필요한 지출이 대부분이었다. 아빠 환갑 때 백만원 가까이 나갔지만 그건 뭐 일상적인 건 아니었고. 화장품도 쓰는 것만 쓴다. 휴대폰도 2년 약정 끝났는데 바꾸고 싶은 마음이 안든다. 안 입는 옷을 계속 버리고 있어서 옷을 더 사긴 싫다. 집에 버릴 물건이 한 가득이라 더 사질 못하겠다. 처치 곤란이다. 버리는 일은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다. 버릴만한 걸 고르는 것도, 버리는 방법을 찾기도 어렵다. 당근 마켓에서 열심히 팔고 있지만 삶에 큰 변화가 없다. 짐이 줄질 않는다. 다 버릴 때까지 사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몇 달 뒤면 가구나 인테리어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잔잔한 지출에 흥..

단편기 2020.11.19

운동일지

여초 집단이었던 필라테스 센터에 남자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신 이후로 운동 만족도가 아주 높아졌다. 그간 거쳐온 수많은 여자 선생님과는 확실히 다른 움직임을 요구한다. 코어 운동을 집중적으로 시키고 강도도 높다. 힘든 구간에서 한번 더 '조지는' 방법을 잘 안다. 다른 선생님 수업에선 숨쉬기 운동만 하다 오는 것 같아서 불만이었는데 가장 큰 문제가 사라졌다. 또 다른 장점은 세심함. 클래스에 들어온 수강생을 기억해두고 사람마다 난이도를 다르게 지정해준다. 소규모 강습도 아닌데 1대1 커버를 해주다니 대단한 센스다. 컨디션이 안좋아서 제대로 못하면 잔소리도 하시는 데 나는 그 편이 좋다. 스승한테 배우는 느낌이 나서다. 수업이 만족스러워 필라테스만 집중했더니 최근 한 달은 달리기와 근력운동엔 소홀했다. 오..

단편기 2020.11.17

사유리라는 아이콘

www.youtube.com/watch?v=3knxXzKhyn8&feature=youtu.be 사후피임약 복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의견이 갈린 적이 있다. 불가피하게 피임에 실패할 경우 남자가 여자에게 복용을 강요할 수 있냐는 문제였다. 남자 입장에선 약을 권해 간단히 끝내고 싶겠지만 여자에겐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남성이 책임감을 나눠가진다고 하더라도 임신과 낙태의 주체는 여성이다. 내 몸의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한 번 더 고심하게 되는 문제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데 고민의 시간이 왜 필요하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 한 매체에서 비혼 여성의 출산에 대한 기획보도가 나왔다. 주제를 세 꼭지로 나눈 기획 기사였다. 낙태로 국한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임신으로 확대된..

단편기 2020.11.17

상어와 캥거루

취미로 그림을 배우고 있다고 하니 뜬금없이 상어와 캥거루를 하나씩 그려볼 수 있겠냐고 물었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사물이나 동물을 그려주어야 할 때가 있는데 선 조차 그릴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는 것이다. 나도 둘 다 그려본 적은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번 그려보기로 했다. 캥거루는 워낙 특이한 동물이니 대충 비슷하게 그렸는데. 상어는 정말로 상어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다시 그려도 피라냐같았다. 평소 상어나 상어를 도식화한 걸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수많은 상어 중에 어떤 상어를 그릴 지 특정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상어는 죠스에서 본 괴상한 형체였을 뿐. 눈은 얼마나 작은지, 주둥이는 어떻게 생겼는지, 지느러미는 어디에 달렸는지, 꼬리 모양은 어떤지 무엇 하나..

단편기 2020.11.15

매일의 일

오늘부터 하루를 기록하는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목표는 1년이다. 형식은 간단하다. 날짜를 쓰고 제목으로 하루를 묶는다. 그리고 매일 쓴다. 쓰고 싶은 말이 없으면 쓸게 없다고 쓴다. 왜 쓸 게 없는지도 쓴다. 바쁘면 바쁘다고 쓴다. 그날 먹은 식단이라도 읊는다. 그것도 싫으면 이 닦는 횟수라도 남긴다.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모든 게 결정났다. 아주 충동적이었다. 찰나에 스쳐간 생각인데 좀처럼 이 영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리고는 뭐 대단한 결의를 한 것처럼 모든 걸 포기하는 심정으로 해보겠노라 아무도 모르게 지하철 안에서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중고 서점에서 손에 넣은 책 때문이었다. 사진으로 꽉 찬 인테리어 책을 구해보려 갔는데 그런건 하나도 찾지 못했다. 대신 뜬금 없는 책 하나를 손..

단편기 2020.11.14

무거워

시동이 막 꺼진 차 운전자가 떠나자 익숙한 듯 온기를 찾아 보닛 위로 껑충 올라온다. 자리를 잡은 두 고양이들은 서로의 목과 손을 포개더니 이내 잠들어버렸다. 껴안아 서로의 무게를 느낄 때 온기는 더 두터워진다. 무겁게 안을수록 따뜻하다. 나의 경험은 그랬다. 목을 파고 들었던 얼굴의 감각과 어깨를 누르던 턱의 무게가 희미해지면 좀 더 무겁게 안아도 괜찮을거야. 나의 경험은 그래.

단편기 2020.11.10

자야

귀에 걸려 와닿지 않았는데 마침 좋은 용법으로 나와 있다. 단어가 가진 고유의 의미와는 별개로, 쓰이면서 갈라지는 뉘앙스의 전말을 본인만 눈치 채지 못한 걸까. . 시인과 기생. 자야와 백석은 자주 소진되는 이야깃거리지만 생각할 때마다 서늘하고 애달프다. 그 이유는 언제나 자야였다. . 오랜만에 최애 책 들여다보니 마음이 부풀었다. 관북지방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꽉꽉 들어찬다. 녹아 흘러가지 마라. .남한 교과서에 실린 시 제목들을 읊으며 끝나는 마지막 장은 정말 압권. . 백석 초대 연구가인 이동순은 이 책을 명편이라 했다. . 김연수 작가의 신간을 보기 위해 다시 꺼냈다. 주인공은 백기행이다.

단편기 2020.10.28

9와 11 그즈음

일하지 않을 땐 여의도를 보는 것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 삐약거리던 병아리 시절 이야기🐣. 혐오할 게 많은 시대지만 나로선 유일하게 극혐하는 마음을 공식화했던 대상이었는데. 이젠 괜찮은 걸 보니 고인 물 다 됐나 봄. 멍 때리며 야경도 잘 본다. 맨하튼처럼 더 높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땐 좀 따뜻해서 밖에서 길게 대화 나누기 좋았다. 지금은 좀 춥겠지. 나쁜 계절은 더디고 좋은 계절은 이렇게 속절 없이 가는지.글도 그림도 모두 관찰에서 시작. 관찰은 자신있는데 그걸 담아낼만큼 성격이 가늘지 못하다. 더 붙잡고 있기엔 마음이 바빠서. 눈, 코 끝내고 입술 그리는 중.굳'골목마다 물이 흐른다면' 중앙일보 주말판. 세밀화는 언제나 감동. 그걸 기획한 중앙일보는 더 감동. 잘 프린트 한 다음 집에 ..

단편기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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