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2020.07]제주도

23km

Post truth 2020. 7. 15. 23:56

제주공항~항몽유적지
17.85km

항몽유적지~광령초등학교
5.26km

머무는 내내 몸을 쉴 새 없이 쓸 계획이었다. 차도 빌리지 않았다. 아침에 나가서 하루종일 걷고 뛰다 밤 되면 기절해 쓰러져 자는 게 유일한 계획이었다. 맛집 검색도 없다. 그냥 몸이 부수어져라 다닐거다.

실제 그렇게 해보니 첫날부터 무릎 개박살남. ^^

올레17길과 올레16길을 이어 가려 했다. 시작은 좋았다. 얕은 해안가마다 서핑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올해 안에 나도 배울까 하는데 이번 여행에선 두 다리만 쓸 예정이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자전거 전용길과 헷갈려 그만 올레길 코스를 벗어났다. 벗어난 지 한참 뒤에야 알게 돼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쩐지 차도 옆을 지나는 길이 너무 많다 했어.
잘못 들어선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16길의 종착점이 나온다. 계획대로라면 내륙을 돌고 바다를 만나야 했지만, 이렇게 된 거 해안도로 따라 걷다가 내륙으로 들어가 일정을 마무리 해야겠다.

길을 잃어 내 멋대로 걷다가 만난 카페.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는 글귀가 뼈를 쳤다.

애월 해안 도로

제멋대로 걸은 것 치곤 길이 정말 좋네.

7년 됐나. 선크림,모자 없이 선글라스 하나 걸치고 올레길 걷다가 친구랑 나란히 코허리에 화상 입은 적이 있다. 콧등이 불에 탄 것처럼 딱지가 올라온다. 주변 사람들에겐 좋은 놀림거리가 됐지. 그래서 이번엔 완전 무장했다. 태양이 얼마나 무섭냐면 친구는 최근까지도 피부과에서 재생 시술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예쁘게 피부를 구운 서퍼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간다. 예전부터 태닝하고 싶었던지라.

올레길을 알리는 화살표 . 이정표를 한 번 놓치니 그 담부턴 눈에 불을 키고 찾는다.

진짜 뱀을 봐버렸다. 안그래도 제비 같은 게 제 새끼 보호하려는지 자꾸 공격하고 달려들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잠깐 놀러나온 밝은 갈색과 옅은 녹색이 섞인 뱀이 길 위에 떡하니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끄아악 질렀다. 뱀은 후루룩 하고 사라졌다. 놀란 가슴 진정시키다, 혼자서 방정 떤 게 민망해 웃음이 새어나왔다. 감정이 순간 폭발해서 그런가, 그간 마음에 있었던 긴장까지 뱀의 등을 타고 멀리 가버렸다.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다. 오는 길에 계속 그 장면이 생각나 실없이 웃었다. 물리기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삶이 연속되는 건 전적으로 운의 영역이다.

마을의 젖줄이었을 샘. 큰섬지라고 한다. 70년대까진 식수로도 쓰였다고. 지금은 거미줄이 무성하다.

망아지♡

해바라기♡

화산송이로 붉게 보이는 흙.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뭘 심어도 맛날 듯.

목표한 지점에서 만난 예쁜 카페. 길이 끝나니 다시 삶 속으로 돌아왔다.

23km 정도 걷고 뛰는데 걸린 시간은 네 시간 반 정도. 약한 고리긴 하지만 뭐 했다고 벌써 무릎이 나가냐..이제 첫날인데ㅠㅠ초기 대응이 중요할 것 같아 소염파스 잔뜩 사서 붙여 놨다. 절뚝거리지 않고는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더 심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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