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2019.06]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본 오페라 : La Cenerentola

Post truth 2019. 12. 24. 16:12

 

 

마시모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직원은 몇 일 전에 모든 공연이 끝났다고 했다. 인터넷으로도 일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나도 공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내가 찾지 못한 다른 공연이 있진 않을까, 혹은 다른 기회가 생길까 하는 마음에 찾아 간 것이었다. 높은 구두까지 챙겨 왔다. 영화 <대부>에서 그랬듯 드레스업해 공연을 보려 했다. 마시모는 그럴 가치가 있다. 

기대와 달리 여행 기간 동안 마시모에서 하는 공연은 없었다. 안내원은 대신 팔레르모 시에서 하는 다른 미술관이나 음악홀에서 하는 공연들을 소개해줬다. 공연장은 팔레르모 시내에 흩어져 있지만 일종의 '연합' 형태라 티켓 구매는 이곳에서도 가능하다고 했다. 마침 숙소와도 걸어서 15분거리.

온라인으로 사전 예매도 가능하지만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이날 예정된 공연은 신데렐라로 잘 알려진 La Cenerentola.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다 동화의 이미지가 강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공연의 내용보다도 공연을 보는 행위를 즐기고 싶었던 거라 티켓을 샀다. 현지인들이 어떻게 문화생활 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   

 

 

성인은 30유로. 학생은 24유로. 먼저 학생이냐고 물어보길래 아니라고 안했다. 할인 받았다.    

 

 

어린아이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왠걸 대부분 성인 관람객이었다. 특히 중장년층.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오페라인 듯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 옷 다들 잘입는 거 아는데, 이날은 그 중에서도 패피만 모인 듯.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미술관 안에서 하는 공연이라고 해서 공간이 어떻게 나올 지 궁금했다. 전시관을 지나 공연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다. 밖에선 그 구조를 알 수 없었지만 이 미술관은 가운데가 뚫린 'ㅁ' 형태의 미술관이었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하는 야외 공연. 장소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미술관 건물로 둘러 쌓여있는 공간이라 더 예술적이고 프라이빗하게 느껴졌다. 이날은 40도까지 치솟는 폭염이 있었던 날이었는데, 밤 8시에 하는 공연이라 날도 선선히 풀렸다.  

 

 

야외 공연의 묘미는 머리 위로 달이 비추고, 선선히 부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무대로 들어가고 나가는 배우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무대 뒤에서 목을 푸는 배우들의 소리도 거칠게 들린다.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엔 서로 인사하고 껴앉고 비쥬하고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무대 앞에서 연주하는 아티스트들도 사실 동네 주민이라 쉬는 시간엔 객석으로 나와서 지인들과 놀다 시간되니 자리에 앉아 다시 악기를 잡더라. 꾸밈없는 모습들. 팔레르모 특유의 에너지였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지열이 남아있었다. 일요일 밤인데도 사람들은 광장에 오래 머물렀다. 한국 사람은 없었다. 일본인 가족이 한 팀 있었지만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보니 여기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 같았다. 이방인이 되고자 했던 목표를 제대로 실현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이날 먹은거라곤 조식으로 나온 빵과 호스트가 직접 내려준 커피, 버스를 기다리며 먹은 피스타치오케이크와 에프스레소 한 잔. 공연 전 옷 갈아입으러 돌아가던 중 말라 죽을 것 같아서 산 레몬 그라니따 뿐이었다. 아페롤스프리츠 한 잔에 해산물리조또 허겁지겁 먹고 나서야 조금 외롭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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