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기

빌런이 사라졌다

Post truth 2020. 12. 9. 22:55


그렇게 악착같이 일했던 a 임원도 결국 올해를 넘기지 못했다. 올해 중반부터 그의 거취를 두고 왈가왈부한 사람 중에 하나가 나였는데. 견고했던 그가 fa 시장에 나오니 기분이 묘했다.

비굴하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동종 업계 사람들이 입 모아 말할 정도로 영혼을 갈아 일을 한 사람이다. 가장 큰 약점은 거짓말이었다. 관련 에피소드는 쏟아질 정도다. 이런 평판 속에서도 오래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양질을 떠나 그는 분투했다.

여러 사람들의 거친 평가와 달리 그는 식사 자리에서 점잖았다. 솔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는 것은 당연히 많았다. 말이 많았지만 선은 넘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그는 내 지인이 앞가림할 수 있게 거두어 챙겨주기도 했다. 이런 면을 알기에 그의 치열한 삶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시장엔 좋은 사람만 있을 수 없다. 독하고 끈질긴 사람이 있으면 그 존재만으로도 세계에 긴장감이 형성된다.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왔다 갔다고 하면 경쟁자들의 마음은 순간 불편해진다. 당장 자리에 없지만 그가 같은 자리에서 했을 말과 행동을 의식하게 한다.

빌런이 사라진다. 모든 게 세월 때문이다. 그 정도의 그도 이 업계를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잠깐 허무해졌다. 그를 비웃던 사람들도 이번엔 나와 같이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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