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기

Forbidden city

Post truth 2019. 11. 3. 21:12

자아가 형성되기 전 본 것 중 기억나는 몇 안되는 영화. 아빠가 좋아하는 영화다. 지금은 내가 더 좋아하는 영화.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 듣고 싶어서 다시 봤다. 개인적으론 여기에 쓰인 음악이 류이치 아저씨 인생작인 것 같다. 들을 때마다 심장이 너무 나대. 후궁이 황제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혼하는 장면에서 하필 노래가 풀로 나오다니. 다시 보니 류이치 아저씨 후반부에 괜히 엄청 나온다. 비중이 큰 역할도 아닌데 혼자서 엄청 심각. 음악을 너무 잘 만드니 감독들이 사심 담아서 더 챙겨준 듯 하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이런 비슷한 얘기 했던 것 같은데.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문이다. 시대가 변화할 때마다 공간이 열리고 닫겼고 황제는 운명에 따라 매번 그 시류 속에 갇힌다. 입궁한 후부터의 삶은 감옥살이와 다를 바 없었다. 정신적 교화를 이룬 뒤에야 그럴듯한 자유를 얻었지만 모택동 시대를 맞으면서 그 자유도 온전치 않았다는 걸 직면하게 된다. 신해혁명을 겪고 모택동 시대도 만나다니. 당연히 푸이를 보면 고종 황제가 오버랩되는데 그에 비하면 진짜 오래 산거네. 한국전쟁 겪고 수습하는 동안 중국은 황제를 포함한 전범들 교화시켰구나. 반세기만에 G2로 다시 올라온 게 놀랍지도 않다. 사실 나의 세대는 세계사적으로 중국의 국력이 가장 약했을 때 태어났다고 하지 않나. 다시 정상궤도에 오른 걸 목격했다는 의의가 있네.  

초반에 오리엔탈리즘이 과하긴 했지만 청나라 말기를 이렇게 고전적이고 깔끔하게 담아낼 영화는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위화나 모옌 같은 중국 작가들의 책을 보면 침 뱉는 행위에 대해 자주 묘사했던 것 같은데 황후가 막판에 몸소 보여줘서 어떤 정서인지 완벽 이해했다. 아 그래도 묘사들을 보면 '칵 퉤'가 정석인데 황후라서 차마 '칵'은 못하고 '퉤'만 해준 것 같기도 하다.

러닝타임이 160분 정도 돼 며칠을 쪼개 봐야 했다. 푸이가 쓴 자서전을 읽어보려 했는데 절판된 걸로 나오네. 일종의 사상서로 분류됐을지도. 그래도 궁금해서 부탁해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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