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기

68혁명의 부재

Post truth 2019. 11. 23. 12:22

 

 

중앙대 김누리 교수 강의. 추천 받아서 돈 주고 봤는데 정말 좋았다. 131회, 132회 두 편으로 나눠져 있다. 학부 때 독일 관련 수업 들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조국을 필두로 불거진 86세대의 이중성과 이로 인한 세대갈등이 내년 총선이 키워드가 될 듯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 갈등의 한 축이 될 것 같아 관련 책들을 보고 있는데 이 사안과도 연결되는 내용들이 많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취재원과 최근 세대 갈등 얘길 하면서 들려주신 생각과도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이건 나중에 한 번 정리할 예정. 한국 사회가 정치, 경제적으로 얼마나 기형적인지 또 대북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할 지 생각하게 된다. 

 

경항신문/ [세상읽기]86세대 정치인들의 ‘뻔한 사표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976390

[세상읽기]86세대 정치인들의 ‘뻔한 사표쇼’

장면 1#: 1990년대 초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소련 및 공산권의 몰락이라는 대사건을 예측도 분석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세계질서가 어떻게 될지, 또 어떠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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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회]

= 양철북 작가 귄터그라스를 타깃으로 논문 썼다. 귄터그라스는 독일 통일을 강력하게 반박한 사람 중 하나. 4-5년동안 통일이라는 변화가 독일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줬는지 분석해 논문과 책을 썼다.  

= 독일은 우리에게 '찢어진 거울' 같은 대상. 독일이라는 거울에 한국을 비춰보면 한국이 일그러져보인다. 그걸 보려면 68혁명을 알아야 해 

= 우리가 아는 독일은, 과거 청산 잘한 나라, 복지 국가로서 위상 높고, 통일 잘한 나라로 알고 있지. 모두 68혁명에서 비롯. 68이전엔 이런 나라가 아니었어  

= 일본 중국 모두 영향을 받은 68혁명. 왜 한국을 피해갔을까. 이 배경이 기형적인 현재 한국 사회의 주요한 배경 

=  자유민주주의 국가지수, 한국이 상위권. 1위는 아니지만 나는 1위라고 생각해. 그 앞에 있는 나라들이 북유럽 국가들이거나 인구수가 500~1000만명 정도 작은 나라거든.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이상, 인구 5000만 이상) 중에선제일 높아. 한국/영국/이탈리아/독일/프랑스/미국/일본 순. 저 바닥에 있다가 촛불집회로 확 올라갔어. 촛불 집회 근데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어? 역사가 반복된다는 의미잖아. 한국 민주주의 위대함 동시에 취약함 보여줘

= 광장 민주주의 좋아. 그런데 집에 가면 가부장적으로 변해. 직장에선 권위주의적인 사람이고. 갑질하는 상사. 광장의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의 괴리. 저는 그게 68혁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 68혁명.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모든 형태의 억압. 유교적 교리에 따른 억압, 자본주의, 부모님, 취업, 결혼, 사회적 인식 등... 말 그대로 '모든 형태의 억압'.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 전쟁(1965~75). 65년부터 TV 보급되면서 전쟁 참상을 확인하고, 세계대전 이후 자유 세계 수호자라 생각했던 미국에 대한 인식 깨지는 계기. 여기에 미소간 핵 대결. 

= 기존 질서를 무너트려야 한다는 의식 깨어났고,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움직임 시작.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타고 왔지만, 대한해협은 못건너. 이로 한국은 '문화 지체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은 반전, 흑인 운동으로 표출됐고 프랑스는 계급 자본에 대한 불만 퍼져. 학생과 노동자 연대. 일본 전공투 세대는 폭력주의로 변해 색 잃기도. 전공투 온건파 중 양심적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인물들 오에 겐자부로나 와다 하루키 교수 같은 사람들은 균형있는 시각 갖고 있지.

= 세계대전 종결 이후에도 사실 독일은 정신 모차렸어.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나치당 출신인데 그 직후 수상 자리에 있었어. 68세대, 당시에 30살이었던 베아테클라스펠트가 키징거 뺨을 치면서 상징적으로 퍼짐. 1년 뒤 반나치 상징이었던 빌리 브란트가 수상된 계기.  

= 브란트 대학생 학비, 생활금 지원 전액 지원 가능했던 이유? 대학 입학률이 낮기도 했고, 소련 막기위한 마셜플랜, 라인강의 기적으로 재정적 수혜 받기도. 세금도 당연히 높음. 정책 체감률이 중요. 조세 저항이 심한 곳은 세금 낮은 미국같은 나라. 한국도 비슷하지. 독일 정치에서 강조하는 '소셜 저스티스' 그 관점에서 생활비 주기 시작. 교육에선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

= '민주주의를 감행하자'가 브란트 선거 구호였던만큼 모든 분야에서 과감하게 해보자는 식이었다. 정치민주화/사회민주화/경제민주화/문화민주화. 한국은 정치민주화는 잘 이뤄냈지만. 사회 민주화는? 작은 집단에서의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조교 출신인 롤프크라이비히가 총장돼. 당시 30살. 

= 지멘스, BMW 등 독일 대표 기업들 이사회 50%가 노동자. 주주 이사들은 이해관계나 나뉘지만 노동자들은 의견 통일. 위기에 강함. 세계 금융위기 와도 독일 기업은 강함. 노사갈등의 거의 없음. 미리 노동시간, 임금 낮춤. 자유민주당 원내대표 볼프강 미슈닉이 1976년 노사공동결정제 발의. 자민당. 사회민주당 노동당이 아니라. '우리 시민은 경제시민으로서는 노예로 산다'며 어필함. 반대 거의 없이 발의안 통과.

= 파리 코뮌 운동. 코뮤니즘을 공산주의라고 번역해 재산 공유하는 것처럼 억양이 세졌는데. 그냥 공동체라는 의미. 68년 전후 코뮌들 생겨났는데 제일 처음 생긴 '코뮌1'은 성 공동체. 모노가미를 거부하겠다는 것. 자본주의 거부. 지금도 독일 아이들은 소비에 죄책감 느낌. 인간의 지배로부터 자연의 해방. 녹색당이 있는 이유. 

= 한국에 68혁명이 없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 전쟁 때문. 박정희 남로당 출신, 대구가 그땐 한국의 모스크바였어. 박정희는 과거 전력 지우기에 나선 것. 베트남 파병 보내며 한미 결속력 강화. 68년 1월 1.21 김신조 투입 사건 배경이기도. 68년부터 한국 병영사회화. 간첩 색출 위해 주민등록법도 만들어. 국민교육헌장도 이때. 예비군 훈련도 이때 생겨. 68이후 군사 사회 병영사회로 역행하면서 권위주의 강하고 인권 감수성 낮아.져.

=86세대들 정치적 민주화를 이끌었지. 큰 업적이야. 그런데 특권 세습 왜? 거악을 물리치는 걸로 끝. 도덕적 우월감 너무 심해. 진정한 의미의 상대와 싸워본 적 없어. 기회주의적인 수구세력들하고만 싸워봤지. 자기들보다 유능한 사람들하고 싸운 게 아냐. 그래서 86세대가 무능하게 됐다. 지금이라도 86세대의 도덕성 정체성을 발현해야. 

= 40대 이하 국회의원 2명밖에 안돼. 덴마크는 40% 이하야. 직능대표성도 떨어지고. 언론 법률가 교수가 너무 많아.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

= 독일은 경쟁 교육은 야만이라고 생각해. 파시즘에 대한 경계. 최대한 많은 기회를 줘야해.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잖아. 

[1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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